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니 그윈 (문단 편집) == 선수생활 == 1982년 데뷔 시즌 .289를 기록한 이후 15년 연속 규정 타석 3할을 넘겼으며,[* 규정타석을 못 채운 시즌까지 포함하면 19년 연속이다. 이 분야 최고 기록은 [[데드볼 시대]]의 야구황제 [[타이 콥]]의 19년 연속 3할이다. 타이 콥은 규정타석을 못 채운 시즌까지 포함하면 23년 연속 3할을 기록했다.] 5년 연속 타율 '''.350''', 1994년 단축 시즌에는 현대 야구 시즌을 통틀어 가장 4할에 근접한 .394의 기록을 남긴[* [[그렉 매덕스]]와 함께 [[1994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파업 사태|메이저리그 파업]]으로 인한 피해자 중 한 명이다. 그가 4할에 거의 근접했을 때 선수노조의 파업으로 인해 .394로 시즌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다. 시즌을 끝까지 치렀으면 4할 타자가 나왔을지도. 시즌이 마감하기 전 마지막 1달간 .450의 타율을 기록하며 한껏 페이스를 올리고 있었기에 아쉬움은 더욱 컸다. 그윈 자신은 시즌이 마지막까지 유지되었다면 4할을 기록했을 것이라 자신했다고 한다.[[https://theathletic.com/1424236/2019/12/23/the-baseball-100-no-95-tony-gwynn/|#]]] 대표적인 교타자. 기량이 다소 하락했다는 은퇴시즌 타율이 무려 .324로, 20세기 후반 메이저리그에서 타격의 달인은 바로 그윈을 말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속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약체라서 MVP, 월드시리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던 점이 아쉽지만, 통산 8번의 타격 1위, 7번의 최다 안타를 기록, 데뷔시즌을 제외하고 출루율이 .350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는 그야말로 타격의 신. 통산 타율 .338로 현대 야구가 확립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선수 중에서는 [[테드 윌리엄스]] 다음의 순위를 차지한다. 90년대 말부터 메이저리그를 지켜본 팬들은 그윈이 '방망이만 잘 돌리는 후덕한 아저씨'로 생각하겠지만, 위 그림에서 보다시피 젊었던 시절에는 통산도루 319개에 달하는 빠른 발과[* 도루자는 125개로 통산 도루성공률은 0.718] 타격의 정교함이 일품이었다. 그의 타격이 얼마나 정교했는지는 통산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볼넷 수가 딱히 많지는 않지만 삼진은 더욱 적어서 한 시즌 20개도 안되는 삼진만 당하는 기록을 주전 출장 기준으로 8시즌이나 기록했다. 메이저리그에서 20시즌을 뛰면서 '''통산 삼진 갯수가 고작 434개, 연평균 22개이다.'''[* 토니 그윈은 타율-출루율의 차이가 크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B/K가 저렇게 높은 것은 삼진을 거의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1997년에는 우투수를 상대로는 단 1개의 삼진을 당했다. 그 삼진을 잡아낸 선수가 바로 [[대런 드라이포트]]이다.]~~[[라이언 하워드|하풍기]]에겐 고작 2년치 삼진~~ 오죽하면 "그윈이 삼진을 당하면, 그윈 본인과, 코치들과, 그리고 공을 던진 투수까지도 놀랐다" 라고 농담삼아 말할 정도. 또한 폭넓게 안타를 치는 스프레이 히터타입이라 2루타를 많이 생산하는 공격적인 2번 타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덕분에 3,000안타는 당연하다는 듯이 기록했고, '''1900년 이후 출생 타자들 중 가장 적은 경기수 만에 3,000안타에 도달'''한 대기록 또한 갖게 되었다.(2,284경기) 거기에 골드글러브 5회 수상에 빛나는 안정된 수비 또한 일품.[* 다만 말년에는 수비력이 크게 떨어져서 1993년부터 은퇴할 때까지 dWAR이 -10.9에 달했다.] 하지만 잔부상에 시달리기 시작한 30세를 넘김과 동시에 도루를 포기하고 몸을 불린 뒤 컨택트에 집중했다. 그래도 완전히 죽진 않아서 37세 시즌인 1997년까지 1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했다. 80-90년대 타격의 상징은 아메리칸 리그의 [[웨이드 보그스]], 그리고 내셔널리그의 그윈이었다. 보그스가 그윈보다 2살 위로 메이저 데뷔년도가 1982년으로 같고 은퇴한 나이도 만 41세로 같다. 타격왕 횟수는 보그스가 80년대에만 '''5회''' vs그윈이 80년대 4번, 90년대 4번해서 총 '''8회'''. 선구안이 뛰어난 보그스가 매시즌 많은 볼넷을 얻어내 출루율은 앞서며(보그스 .415 / 그윈 .388) 그윈은 적극적인 컨택을 통한 안타생산에(보그스 3010안타 / 그윈 3141안타) 집중한 타입. wRC+나 OPS+로 비교하면 토니 그윈이 둘다 132고 웨이드 보그스는 132/131으로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주력은 토니 그윈쪽이 똥차였던 보그스를 압살한다. 그러나 WAR은 f나 b나 보그스 쪽이 훨씬 높은데 이는 수비력 때문이었다. 골드글러브 5회 수상 실적만 보면 수비가 좋았을 것 같지만 통산 dWAR이 마이너스인 외야수였다. 젊었을 때도 수비력은 기복이 심했으며 통산 3번째 골드글러브를 수상한 1989년 수비 기여도를 찾아보면 오히려 커리어 사상 가장 안좋았다. 33세 시즌부터는 수비력을 완전히 상실했는지 아예 대놓고 마이너스만 쭉 찍었고 이게 은퇴 시즌 말고는 마이너스는 안찍은 3루수 보그스와의 차이를 만들었다. 여튼 웬만한 선수들도 잘 인정해주지 않는 [[배리 본즈]]가 [[미겔 카브레라]]의 타격 트리플 크라운을 칭찬하면서 나도 하고는 싶었는데 내가 뛰던 때는 토니 그윈이 있어서 못했다고 말할 정도로 타격에 있어선 최고의 선수였다. 타격 감각도 뛰어났지만 토니 그윈을 '''타격의 달인'''으로 만든 비결은 끊임없는 연구와 연습이었다고 한다. 특히 언제나 공부하는 자세로 임했던 선수였는데, 자신의 타격 내용을 복기해 보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팀 투수를 분석하는데 무척 꼼꼼했다고 한다. 파드리스 라커룸에는 그윈만을 위한 비디오실이 따로 있었을 정도였다. [[베이스볼 레퍼런스]] 그윈 페이지에는 별명으로 '''캡틴 비디오'''가 붙어있다. 토니 그윈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애틀랜타]] 3인방 중 매덕스와 [[존 스몰츠]]에게 거의 저승사자급으로 강했다. 매덕스 상대로는 107 타석 타/출/장 .415 .476 .521 OPS '''.997'''에 '''단 한 번도 삼진을 허용한 적이 없으며''', 스몰츠 상대로는 75 타석 타/출/장 .444 .467 .694 OPS '''1.161'''의 상대전적을 기록(삼진은 하나 허용하긴 했다.). 다만 그윈이 [[톰 글래빈|글래빈]]과 [[페드로 마르티네즈|페드로]] 상대로 3할 타율을 기록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강했다는 인식이 있는데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글래빈을 상대로는 통산 105 타석 타/출/장 .303 .337 .404 OPS .741, 페드로 상대로 36타석 타/출/장 .314 .333 .343 OPS .676을 기록했는데 이는 글래빈 상대로 평범한 좌타자 수준의 성적, 페드로 상대로는 3/3/3 슬래시라인의 성적(…)을 거둔 것으로, 그윈의 통산 타격성적이 타/출/장 .338 .388 .459 OPS .847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글래빈과 페드로에게 매우 약했다고 보는 쪽이 옳다. 투수들의 입장에서 봐도, 글래빈의 좌타자 상대 통산 성적은 피안타율/피출루율/피장타율 .268 .340 .397 피OPS .737이고 페드로의 좌타자 상대 통산 성적은 피안타율/피출루율/피장타율 .233 .296 .375, 피OPS .671이므로 글래빈과 페드로에게 있어서 토니 그윈은 그냥 리그의 평균적인 좌타자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재밌게도 그윈은 매덕스에게는 극강이었으나 [[랜디 존슨]]에게는 굉장히 약했다(…). 그윈과 존슨의 통산 상대기록은 18타수 2안타 0볼넷 '''5삼진''' 타/출/장 .111 .111 .167 OPS .278인데, 이는 토니 그윈 본인의 통산 타격성적은 물론이고 랜디 존슨의 좌타자 상태 통산 성적인 피안타율/피출루율/피장타율 .205 .276 .330 피OPS .606에도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이다. 다만 고작 18타석밖에 안 되는 표본이라 진지하게 따지기엔 너무 적긴 하다. 매덕스, 스몰츠, 글래빈 상대의 타석수에 비하면 엄청나게 적으니...~~ 좌타자가 존슨에게 약한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선수 시절 말년에는 [[칼 립켄 주니어]]와 더불어 메이저리그를 대표했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의 상징이었다. 짧은 역사에 그마저도 대부분을 약팀으로 보낸데다 스타 선수도 적었던 파드레스 팬들에게는 더욱 각별했던 존재. 마지막 올스타전이었던 2001년 올스타전에 비록 립켄처럼 인기 투표에는 뽑히지 못했지만 감독 추천으로 참가할 수 있었다. 2007년에는 칼 립켄 주니어와 같이 97.6%의 득표율로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윈의 등번호는 당연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영구결번/스포츠|영구결번]]으로 처리되어 있고, [[펫코 파크]]를 지나는 도로의 이름에도 "토니 그윈"이 들어가 있으며([[https://www.google.co.kr/maps/place/Tony+Gwynn+Dr/@32.7067798,-117.1582473,17z/data=!3m1!4b1!4m2!3m1!1s0x80d9535b1242454f:0xc57fbfd888d9dd34|토니 그윈 드라이브]]), 구장 앞에는 "Mr. Padre"라는 문구가 새겨진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